♫ ㆆㅿㆁㆍ가 돌아오면 한국의 詩語는 달라질까?

2NE1·성시경의 노랫말, 윤동주 「서시」의 육필원고, 월명사의 「제망매가」를 예로 들어, 자판에서 사라진 옛한글 ㆆ·ㅿ·ㆁ·ㆍ가 돌아오면 한국 시의 말소리와 표기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 생각해 본 글입니다.

아래는 저자의 책 《正音으로 듣고쓰다》 226–227쪽의 최종본입니다.

♫ ㆆㅿㆁㆍ가 돌아오면 한국의 詩語는 달라질까?

시의 원형이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면 나타나 읆조리며 노래하던 음유시인(bard)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詩語는 왜 가끔식 맞춤법을 지키지 않는지, 또 그런 선택이 낭송할 때의 맛을 살리는 것을 넘어 시를 살리고 죽일 수도 있슴을 알게 된다. 성시경의 발라드 “이윽고~내가 한눈에 너를 알아봤을 때~ ”에서 첫음절은 반드시 ‘이윽고’여야 한다. 만약 한국가요를 좋아하는 외국가수가 매큔-라이샤워 표기법 때문에 ‘이윽코~’로 부르기 시작한다면 그 순간 청중들은 얼어붙고 곡의 분위기는 되살릴 수 없게 된다. 저자는 한국어를 표기하는 출판/문서/여권 같은 목적에서는 한글로 충분하다 하였고, 다만 외국어 발음학습자나 외국노래를 IPA에 의존하지 않고 따라부를때 훈민정음의 표음능력을 시연하였다. 작은 차이도 중요한 詩에서 자판에서 사라진 ㆆㅿㆁㆍ가 돌아오면 뭐가 달라질까? ㆆ는 2NE1의 ‘미.미.미.미치고 싶어’를 「미ᇹ미ᇹ미ᇹ 미ᇹ치고 시퍼」로 쓰거나, ㅿ는 ‘쾌지나 칭칭나네’에서 한국 사물놀이 사운드는 꽹가리만 칭칭대는게 아니라 육중한 징의 brass한 소리까지 layered 된 두터움이니 「쾌진아 칭ᅀᅵᆼ나네」도 괜찮을 것 같다.

윤동주의 서시(序詩)는 워낙 인기있어서 인터넷에 다양한 사람들이 필사한 버전이 있는데 시인의 육필원고에는 “나않테 주어진 길”에서 ‘않’을 지우고 ‘나안테’로 고쳐썼으며 대중들은 맞춤법에 맞게 ‘나한테’로 쓰거나 나안테/나한테 논란에 거슬렸는지 아예 ‘나에게’로 바꿔쓴 버전도 보인다. 육필원고에 써있는 날짜 1940년 11월 이후 2-3년만에 이 감수성 여린 청년이 일제에게 겪은 일을 생각하면 서러움과 울분이 담긴 유성음 ‘나ᅌᅡᆫ테’도 떠오르나 작성당시에는 자신의 시 19편을 골라 첫시집을 출간할지 고민하며 일본유학을 준비하는 시기였으니 ‘나ᅌᅡᆫ테’는 감정오버이고, 그렇다고 ‘나한테’로 하면 무성h 때문에 너무 일상적 어휘가 되어 버린다.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명상적이고 자기수양적이라 필자는 [nɐɦɐn] 정도의 발음이 대안이 될 수 있다 보는데, 초성자리에 유성ɦ를 표기하면 「나ᄒᆞᆫ테 주어진 길」이 된다. 윤동주와 유재하는 22-24살의 나이에 자신의 불안한 앞날에 대해 노래했지만, 그걸 쓰고 부르고 있던 그 시점에 이미 자신의 天才를 증명하는 마스터피스는 완성되고 있었고 그 후에 닥쳐 올 비극을 아는 팬들로서는 더욱 가슴아픈 서사가 될 수 밖에 없다. 유재하 1집의 「가리워진 길」과 윤동주 序詩의 「나ᄒᆞᆫ테 주어진 길」 그리고 요절한 월명사 누이의 生死길(ᄉᆞᆷ사러)은 모두 애달프지만 아름다운 명곡이 되어 남았다.

제망매가를 正音으로 세로쓰기하고 생사로·불도의 mirror image 구도를 풀이한 지면
《正音으로 듣고쓰다》 중 — 제망매가를 正音으로 세로쓰고 생사로(生死路)·불도(佛道)의 거울상 구도를 풀이한 지면.
From the book: the hyangga “Jemangmaega” written vertically in 正音, with its mirror-image layout of the road of life-and-death and the Buddhist path.

生死路隠 생사로은
此矣有阿米次肹伊遣 차의유아미차힐이견
吾隐去内如辝叱都 오은거내여사질도
毛如云遣去内尼叱古 모여운견거내니질고
於內秋察早隠風未 어내추찰조은풍미
此矣彼矣浮良落尸葉如 차의피의부량락시엽여
一等隠枝良出古 일등은지량출고
去奴隠處毛冬乎丁 거노은처모동호정
阿也彌陁刹良逢乎吾 아야미타찰량봉호오
道修良待是古如 도수량대시고여

제망매가(祭亡妹歌) 향찰 원문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덕왕19년(760년) 2월에 궁궐 남쪽 남천(南川) 위에 월정교(月淨橋)와 춘양교(春陽橋)를 놓았고, 『삼국유사』에서는 같은 해 4월 월명사가 경덕왕 앞에서 ‘도솔가’를 지었다고 되어있으니, 月明師가 月淨橋를 건너 다녔을 지도 모를 일이다. 밝은 달이 선명하게 ‘월인천강’하기 위해서는 수면이 고요해야 하니, 그런 풍경을 보고 月淨이라 하였을 수도 있고…

도솔가를 짓게 된 경위는 두 개의 해가 나타나 열흘동안 사라지지 않았고, 인연있는 승려에게 청하여 산화공덕(散花功德)을 행하면 물리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왕이 마침 지나가던 월명에게 의례를 청하니 그는 “신승(臣僧)은 국선의 무리에 속해 있으나, 향가만 알 뿐 범성(梵聲)에는 익숙치 않습니다.” 라며 도솔가를 짓는다. 거꾸로 생각하면 신라시대 왕실의례를 지낼 정도의 승려라면 범어로 된 경문/게송에 익숙했다는 게 아닐까? 15세기에 정음이 나오기 전에도 이 땅에 표음수단이 있었으니 그것은 향찰이었고, 향가작가 중에는 유독 승려들이 많다. 그들이 산스크릿을 표기한 범어(Siddham)경전을 읽었다고 보면, 제망매가의 ‘사이ㅅ’ 叱의 기원은 산스크릿까지 이어진다. 범어불경은 중국대륙을 거치며 한자로 음역되었고, 한역불경에서 산스크릿의 sibilant (s/ś/ṣ)을 표기하던 叱가 향찰에서도 ‘사이ㅅ’으로 사용된 것이다. 또한 일본승려 空海(ᄏᆕ까이)가 당나라 유학을 떠난 8세기 대륙의 발음(중고한음)은 叱≈/tɕʰit/였는데, 이후 중세일본은 ㅊ계열(つ) 끼워넣기로 촉음을 표기하다가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っ를 사용한다. 꽃/꼿의 종성이 둘다 불파음[t̚]를 이루듯 한쪽은 ㅅ, 한쪽은 ㅊ을 선택한 것이다.

탁발승으로 전국을 떠돌던 월명이 고향집에 우연히 들렀다가 얼마전 여동생이죽었다는소식을 듣고 슬퍼하며 누이를 애도하는 祭를 지낸다는 기존 이야기에서 동생은 끝없이 윤회하는 중생, 월명은 도를 닦아 누이를 서방정토로 이끄는 출가자로서 분리된 구도가 된다. 월명보다 1세기 앞선 신라승려로서 만사일여(萬事一如)를 강조하던 원효의 사상으로 본다면 좌우대칭인 월정교의 구조처럼, 무자성(無自性)을 깨우친 道 위에 있는 월명에게 진여문(眞如門)이 열렸을 때, 반대편에 놓인 것은 누이의 生死路가 아니다. 봉사가 눈을 뜬다고 차표 없이도 집에 갈수 있는 게 아닌 것처럼 眞如門이 열린다고 生滅門이 닫히는 것이 아니어서, 열린 생멸문을 통해 누이가 보이는 것 뿐이며, 월정교는 두 세계를 연결하는 하나의 다리(一心二門)가 되고 중생이 곧 부처가 되는 것임을 깨닫게 되니, 다리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원래부터 한(一)가지에서 나와 이 세상에 온, 아미타 세계에서 마주할 悟, 즉 不二(一心).

보름달 아래 월정교와 징검다리 위의 승려
보름달 아래 경주 월정교(月淨橋)와 징검다리 위의 승려.
Woljeonggyo Bridge in Gyeongju under a full moon, with a monk on the stepping stones.

출처: 진현수, 《正音으로 듣고쓰다》, 226–227쪽.

https://hun-min.com/?p=1742

한국어 맞춤법의 역사 – ㆁㆆㅿㆍ는 왜 사라졌나

갑오개혁 이후 한글 표준표기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ㆁㆆㅿㆍ와 ㅱㅸㆄㅹㆅ가 사라지고, 된소리 표기가 ㅅ계 합용병서(ㅺㅼㅽㅾ)에서 각자병서(ㄲㄸㅃㅉ)로 정착한 역사를 정리했습니다.

아래는 저자의 책 《正音으로 듣고쓰다》 7쪽의 최종본 전문입니다. PC에서는 아래 창에서 책 지면(표·그림 포함)을 그대로 넘겨 볼 수 있고, 휴대폰에서는 다운로드 버튼으로 PDF를 열 수 있습니다.

해례본의 훈민정음 자음부터 이야기를 시작하고 싶지만, 현재 우리가 익히아는 한글과 훈민정음에는 차이가 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조선양반계층이 몰락하기 전까지 조선의 공식 문서는 한자로 작성되었기에 언문맞춤법이란 것을 제정할 필요가 없다가 일제 식민지 시절에 지석영/주시경 같은 학자들을 중심으로 한글의 표준표기법이 발생하는데 이런 과정을 거쳐 정음에 있던 ㆁㆆㅿㆍ / ㅱㅸㆄㅹㆅ가 사라지고, 7종성 위주였던 조선시대 사용법과 달리 모든 자음을 받침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눈여겨 볼 것은 된소리표기 방식인데 ㅺㅼㅽㅾ vs ㄲㄸㅃㅉ 가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ㅅ계 합용병서’는 사라지게 된다. 종성ㅅ은 중세국어에서 폐쇄음 표기를 맡으면서 받침에서는 –ㄷ소리로 인정되어 갔으니 ㅅ+ㄱㄷㅂㅈ로 된소리를 표기한 것이 이해가 간다.

만약 ㅅ계 합용병서가 승리했다면 우리는 ‘짬뽕 깍뚜기’ 대신 ‘ᄶᅡᆷᄲᅩᆼᄭᅡᆨᄯᅮ기’라 표기하고 있을텐데 영 볼썽사납다. 동일한 자음을 겹쳐쓰는 각자병서를 선택한 것은 처음 한글을 배우는 학생의 암기측면에서도 편하고, 시각적인 면에서도 미려하다. 애초에 창제시부터 ㄲㄸㅃㅉ가 경음표기에 할애되었다면 저런 논란자체가 없었을텐데, 15c에 만들어질 당시 에는 다른음가를 표기하던 각자병서를 경음표기用으로 전환하다 보니 저런 혼란이 있었 다. 그러면 ㄲㄸㅃㅉ의 원래 음가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유성자음(알파벳소리-gdbz 또 는 중국어의 有聲어두자음)이며, 한국말에는 어두에는 없고 어중·어말에 있는 소리로서 ‘앙드레 김’은 어두에서도 사용하는 노곤한 ㄱㄷㅂㅈ인데, 앞으로 다시 언급될 것이다.

출처: 진현수, 《正音으로 듣고쓰다》, 7쪽.

https://hun-min.com/?p=1654